선거/일본의 선거

제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K66Google 2016. 9. 12. 20:04

*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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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는 1904년(메이지 37년) 3월 1일에 행해진 중의원 선거다.



- 개요
1903년 12월에 열린 제19회 제국의회에서 신임의 코노 히로나카 중의원 의장이 메이지 일왕의 칙어에 대한 봉답문 안에 정부비판의 문구가 있었다는 이유로(봉답문 사건*), 카츠라 타로 수상이 중의원을 해산했다. 선거는 러일전쟁이 개전중이었기 때문에 거국일치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 선거 데이터

* 내각: 제1차 카츠라 타로 내각
* 해산일: 1903년(메이지 36년) 12월 11일
* 투표일: 1904년(메이지 37년) 3월 1일
* 개선수: 379
* 선거제도: 대선거구제 (일부 1인선거구제) , 제한투표 (직접국세 10엔 이상 납세하는 만 25세 이상의 남성)
* 유권자수 - 76만 2445명 


- 선거 결과

 투표율

 86.06% (-0.11%)

 입헌정우회

 133석

 헌정본당

 90석

 제국당

 19석

 갑진구락부

 39석

 무명구락부

 25석

 자유당

 18석

 무소속

 55석





- 용어 설명


* 봉답문 사건:

메이지 36년(1903년) 12월 10일, 의회 개회 즈음에 중의원 의장 코노 히로나카는 개원 칙어에 답하는 봉답문에 기존 의회의 방식을 뒤집고 내각탄핵의 글을 꿰어넣어서 의회의 찬성을 얻었다.
애당초, 중의원에서 하는 '개원식 당일 하사'의 칙어에 대한 봉답문은, 늘 하던대로 중의원 서기관장에 의해서 초안을 작성하고 그 위에 기초위원의 협의 결과를 더해서 의장에서 의견과 찬동을 구하고, 찬동을 거쳐서 궁중에 올리는 것이다.
당시, 일본과 러시아의 관계가 문제가 되고 있어서 코노는 마음 속 깊이 결심하고 있었던 게 있었다.

코노는 선례를 깨고, 봉답문 안에 '이제 국가의 번영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았는데, 내각은 이것을 따라오지 못하고 내정은 미봉책들 뿐이니 우리는 외교적 기회를 잃고 있다.' 라는 말을 꿰어넣어서 내각을 탄핵하고, 국민의 의사를 메이지 일왕의 귀에 넣으려고 일을 꾸몄다.
하야시다 서기관에 의한 의회의 선례가 있지만, 코노가 법규 해석 상 허용되는 범위를 찾아내서 결심하게 된 이유가 있는데 늘 하던대로 서기관장이 처음 쓴 원안, 의회에서 성립한 봉답문, 기초위원의 기초문은 단지 의장의 참고에 그치는 걸로 해석한 것이다. 이에 코노는 자신이 직접 쓴 '위의 문장' 을 품속에 넣고 의장에 가서 이것을 낭독하고 의장의 찬동을 구하였다.

맨날 충성, 칙명에 부응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쓴 봉답문만 자주 들어 귀에 익숙해진 의원들은 문구의 그 의미를 깊이 담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그 후에 의원들은 그 문구를 눈치챘고, 무소속, 제국당, 중정당, 교우구락부 대표가 의회사무실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서기관장에게는 주의깊지 못했다는 의사표명을 요구하고, 의장에게는 봉답문의 재검토를 요구했지만 양쪽 모두 응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에, 의장이 봉답문을 올리는 일때문에 입궐은 다음날 11일 오전 11시로 정해져있었지만, 저녁 무렵 갑자기 궁내성에서 입궐을 연기하겠다고 통보가 와서 결국 11일, 의회 해산의 명령이 떨어졌다.





* 지역별 의석 현황 (득표수, 당선자명, 무소속 후보의 선거 후 입당은 생략)

 도도부현 (총 의석 수)  여당 (제국당)

 야당

 홋카이도 (6)    무소속 4, 입헌정우회 2
 아오모리 현 (6)  

 헌정본당 3, 갑진구락부 2, 무명구락부 1

 이와테 현 (6)  제국당 1  입헌정우회 3, 헌정본당 2
 미야기 현 (7)  제국당 1  헌정본당 4, 입헌정우회 2
 아키타 현 (7)  
 헌정본당 3, 입헌정우회 2, 무명구락부 1,
무소속 1
 야마가타 현 (8)  
 입헌정우회 3, 헌정본당 2, 갑진구락부 1,
자유당 1, 무소속 1
 후쿠시마 현 (9)    헌정본당 6, 입헌정우회 2, 무명구락부 1
 이바라키 현 (10)  
 헌정본당 4, 무소속 3, 입헌정우회 2,
자유당 1
 토치기 현 (7)  

 헌정본당 2, 자유당 2, 무소속 2,

입헌정우회 1

 군마 현 (8)  

 무소속 3, 갑진구락부 2, 무명구락부 2,

입헌정우회 1

 사이타마 현 (9)  

 입헌정우회 5, 헌정본당 3, 무명구락부 1

 치바 현 (10)  
 입헌정우회 3, 헌정본당 3, 무소속 3,
자유당 1
 도쿄 부 (16)  
 입헌정우회 5, 헌정본당 5, 무소속 4,
갑진구락부 1, 무명구락부 1
 카나가와 현 (8)  

 입헌정우회 3, 무소속 3, 갑진구락부 1,

무명구락부 1

 니가타 현 (14)  

 입헌정우회 5, 헌정본당 5, 무소속 4

 토야마 현 (7)    헌정본당 4, 입헌정우회 3
 이시카와 현 (6)    자유당 4, 입헌정우회 2
 후쿠이 현 (5)    자유당 3, 입헌정우회 1, 갑진구락부 1
 야마나시 현 (5)  
 갑진구락부 3, 입헌정우회 1,
무명구락부 1
 나가노 현 (10)  
 입헌정우회 3, 갑진구락부 3, 헌정본당 2,
무명구락부 2

 기후 현 (8)  제국당 3

 입헌정우회 2, 헌정본당 2, 무소속 1

 시즈오카 현 (10)    입헌정우회 7, 헌정본당 3
 아이치 현 (13)  
 입헌정우회 9, 갑진구락부 3,
무명구락부 1
 미에 현 (9)  

 갑진구락부 4, 입헌정우회 2, 무소속 2,

무명구락부 1

 시가 현 (6)

 제국당 1

 헌정본당 4, 무소속 1
 교토 부 (8)    갑진구락부 4, 입헌정우회 3, 헌정본당 1
 오사카 부 (13)  
 갑진구락부 6, 입헌정우회 3, 헌정본당 2,
무명구락부 1, 무소속 1
 효고 현 (14)  

 헌정본당 7, 입헌정우회 5, 자유당 1,

갑진구락부 1

 나라 현 (5)    헌정본당 2, 무명구락부 2, 갑진구락부 1
 와카야마 현 (6)  

 입헌정우회 4, 무명구락부 1, 무소속 1

 돗토리 현 (4)  제국당 2  무명구락부 1, 무소속 1
 시마네 현 (7)  제국당 3

 입헌정우회 3, 무명구락부 1

 오카야마 현 (9)  
 헌정본당 5, 무명구락부 2, 입헌정우회 1,
갑진구락부 1
 히로시마 현 (12)  제국당 1

 무소속 6, 자유당 2, 입헌정우회 1,

헌정본당 1, 무명구락부 1

 야마구치 현 (8)  

 입헌정우회 4, 갑진구락부 3, 무소속 1

 도쿠시마 현 (6)    무소속 5, 헌정본당 1
 카가와 현 (7)  

 입헌정우회 6, 무소속 1

 에히메 현 (8)  제국당 1  입헌정우회 4, 헌정본당 3
 고치 현 (6)    자유당 3, 무명구락부 2, 헌정본당 1
 후쿠오카 현 (14)  

 입헌정우회 10, 헌정본당 3, 무소속 1

 사가 현 (6)    헌정본당 3, 입헌정우회 2, 무소속 1
 나가사키 현 (8)    입헌정우회 4, 무소속 3, 헌정본당 1
 쿠마모토 현 (9)

 제국당 6

 입헌정우회 2, 무명구락부 1
 오이타 현 (6)    헌정본당 3, 갑진구락부 2, 입헌정우회 1
 미야자키 현 (4)    입헌정우회 3, 무소속 1
 가고시마 현 (9)    입헌정우회 8, 무소속 1
 오키나와 현 ()  -  -